홍씨의원류

우리나라 洪氏의 祖上이 중국 唐나라에서 고구려로 초빙되어 왔는데 홍씨 뿐만 아니라 한민족 전체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많은 우리 민족의 조상들이 세계인류의 발상지로 일컬어지는 중앙아시아 지방에서 몽고와 만주를 거처 한반도에 들어와 정착하게 된 것이다.

洪氏의 원류에 대한 기록들을 살펴보면 여러 기록들이 있다. 上古때 중국 황제헌원씨(黃帝軒轅氏)의 후손 공공궁기(共工窮奇)가 있었다. 共工은 당시의 관명이였는데 이를 姓으로 삼았다고 한다. 후일 共工씨의 후손이 피구득수(避仇得水)하여 삼수변을 붙여 洪氏가 되었다고 한다. 一說에는 하(夏)의 우씨(㝢氏)가 九年洪水를 다스려 九土를 평정하고 五行을 순히 하여 이윤(彛倫)을 펴니 하늘로부터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내린지라 후세의 자손이 洪範의 意義를 추모하여 洪으로 성씨를 삼았다고도 한다.

우리나라 洪씨는 고구려 영류왕 22년에 王이 이속(夷俗)을 변혁코자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어 덕예와 문학을 겸비한 선비를 보내주기를 청하니 唐 貞觀 16년 임인에 태종황제가 팔학사 홍천하(洪天河, 은세통(殷世通), 봉수현(奉壽賢), 길영(吉寧), 방비(房丕), 위령(魏齡), 목중(睦仲), 기반(奇半))을 보내어 고구려를 교화시겼다고 한다. 홍학사 천하는 先時에 태자 承範의 亂을 피하여 遼東에 은거하였는데 황제의 명을 받고 배를 타고 한반도 서해안 당성 은수포에 來泊하니 고구려 왕이 정중히 禮로 맞이하여 그곳을 唐城이라 이름하고 사적(賜籍)하였다. 중국의 문화로 이속(夷俗)을 크게 교화하던중 3년후인 을사에 연개소문의 亂을 당하여 신라국 지리산 덕산동에 피난하였다. 이후 고구려가 패망함에 신라 선덕왕이 貧禮로서 우대하여 不臣의 뜻으로 唐臣이라 호칭하였다. 문무왕이 당성(지금의 경기도 화성군 서신면 상안리 구봉산성)을 사록(賜祿)하고 唐城伯에 封하였다. 신문왕이 태자태사로 封하고 唐城候를 가작(加爵)하니 신라 오대군왕이 모두 스승으로 섬긴지라 東國人의 상하남여가 그 교화에 감복하여 長老라 존칭하고 당신(唐臣)이라 하여 동방전래의 미속(美俗)이 되니 이가 곧 우리나라 홍씨의 始初가 된다. 우리말 중에 당신이란 말의 어원이 여기에서 유래되었다는 일설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남양홍씨, 부림홍씨, 풍산홍씨, 홍주홍씨, 회인홍씨, 개성홍씨, 등 관향을 달리하는 여러 門派의 홍씨가 있는데 모두가 이 학사공을 源流로 삼고 있다.

참고 : 당성은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 구봉산에 위치한 사적 제 217호로 삼국시대 축성된 성이며 처음 고구려 영토였다가 백제 영토로 편입된 뒤 후에 신라가 지배하면서 당항성이라 불렀다. 당성, 당항성, 구봉산성(모두 같은곳) 있는 이곳은 고구려 백제 및 신라의 대외 무역항이었다. 현재 이곳 당성에는 중국에서 홍천하(洪天河)라는 인물이 이곳에 이르러 살았다고 하여 홍씨(洪氏)의 발상지로 전해지고 있다. 1914년 남양군이 수원군에 병합되었다가, 1949년 화성군으로 개칭되었다. 현재의 행정구역은 경기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 산 32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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