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문동정
천년마을 한밤마을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에 소재한 한밤마을은 신라의 중악(中岳)이었던 팔공산의 북사면에 위치해 수려한 자연 환경과 더불어 천 수백년의 역사를 지닌 유서깊은 마을이며 오늘날 행정구역상  대율1리.2리.동산1리.2리.남산1리.2리 총 6개의 리를 포함하고 있는 보기가 드물게 큰 마을이다.  뿐만 이니라 부림홍씨(缶林洪氏)세거지 등 역사적 문화적 관점에서 보면 춘산리를 포함한 부계면 거의 전지역과 효령면 매곡리. 산성면 일부지역도 이속에 포함된다.

한밤마을은 팔공산 동산계곡과 남산계곡에서 흘러내린 두물줄기가 마을 앞뒤 동서쪽에서 북으로 흐른뒤 ​마을 잎구에서 합류하여 남천을 이루며 사방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경사진 분지형 지형을 이루고 있다. 동산계곡은 기암괴석의 자연 경관이 빼어나며 남산계곡은 자연경관과 더불어 문화유적들이 여럿 흩어져 있다. 특히 남산계곡에는 양산폭포와 그옆 바위 언덕위에 세워진 척서정 그리고 양산서원을 거쳐 조금 내려오면 신라 고찰 군위삼존석굴이 수직암벽인 학소대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두물줄기가 합해지는 한밤마을 입구에 조성된 성안숲에는 우거진 송림속에 비석 등 여러 유적들이 있어 마을의 역사와 더불어 품격을 말해주고 있다.

또 하나 마을의 진풍경은 팔공산이 쏟아낸 바위와 돌들이 만들어 낸다. 팔공산이 쏟아낸 바위와 돌로 뒤덮인 땅을 일구며 살아가야 했던 옛날 한밤 사람들은 자연스레 돌로 집의 담장을 두르게 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한밤마을의 돌담은 천년의 시간을 더듬게 해주며 돌담과 어울어진 마을풍경은 사시사철 갖가지 서정을 마련해준다. 이렇게 한밤마을이 사방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다 돌로 뒤덮혀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육지속의 제주도" 라 일컫는다.

한밤마을의 역사는 군위삼존석굴의 조성 연대로 볼때 7세기 후반 신라 통일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으로 부터 천년이 훨씬 넘는 시간이다. 군위삼존석굴이 위치해 있는 팔공산은 통일신라의 중악(中岳)으로 불교성지였던 까닭에 한밤마을 일대에도 ​당시의 많은 불교유적과 전설들이 전해오고 있다. 그러나 당시 한밤마을의 내력을 알려주는 구체적인 문헌기록은 지금 거의 남아있지 않다.

한밤마을의 입향이 문헌상 확인되는 것은 고려 초,중엽 무렵이다. 남양홍씨에서 갈라져 나온 홍란(洪鸞)​이란 선비가 한밤마을에 입향하면서 부림홍씨의 시조가 된이후 그의 후손들이 대성벌족을 이루며 천년의 시간동안 이땅을 지키며 내려오게 된 것이다. 홍란이 한밤마을에 입향할 무렵 의흥예씨와 뒤이어 신천강씨도 입향하여 함께 거주 했으나 뒷날 그 후손들은 모두 한밤마을을 떠나고 조선 중엽 이후 여양진씨, 영천최씨, 전주이씨, 예천임씨, 고성이씨 등이 입향하여 오늘날까지 부림홍씨의 후손들과 함께 살고 있다.

한밤마을은 삼국시대 신라로 부터 시작해서 통일신라, 후삼국, 고려를 거쳐 고려의 ​패망과 조선의 건국 임진왜란 동학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기억을 간직한체 근대 일제강점기에 이르며 해방후에는 좌,우 분열과 6.25전쟁의 한가운데 서게 되고 전후에는 팔공산에 공군과 미군의 주둔에 이어 국가의 산업화에 따라 주민들의 도시 이주가 급증하고 새마을 운동이 전개되면서 마을의 모습은 급변하고 있다. 최근에는 팔공산을 관통하는 터널개통이 예정되어 있어 한밤마을은 빠르게 바뀌어 가고 있다. 천년마을 한밤마을에 사는 후손들은 ​긍지를 가지고 전통과 유적을 지키며 꿋끗이 살아가리라

홍원식교수(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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