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관혼상제 예법 바르게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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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례(四禮)

사례란 관혼상제(冠婚喪祭)의 네가지 예를 말한다。고려말 불교의 타락과 주자 가례(朱子家禮)의 전래(傳來)로 사대부 계급에서만 시행되었다。그러나 조선조에 이르러서는 세종때 불교 예법을 금하고 일반인에게도 이 사례를 시행케 하였다。오늘날 우리 사회에 실시되고 있는 사례는 朱子家禮를 근거로 하고、율곡 리이와 사계 금장생선생이 해설을 붙여 편찬한 사례찬설(四禮纂說)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이四禮가 너무 번잡하고 허례허식에 치우친 점이 많아서 가난한 백성들에게 지대한 경제적 부담과 귀중한 시간적 낭비를 초래한 폐단이 없지 않았다。그래서 시대의 변천에 따라 많은 부분이 생략되거나 변형되어 오늘에 이르렀다。이러한 현상은 필연적이며 또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간소화 지상주의로 나가다보면 필경에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儀禮는 곧 형식이다。형식이 엄숙해야 내용이 존엄해진다。내용과 형식은 손바닥과 손등 같은 표리 관계에 있다。이와 같이 형식에 따라 내용이 결정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관혼상제만큼은 민족마다 독특한 의례형식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도 간소화 할 것은 하고、고칠 것은 시대에 맞게 고쳐야 한다。

■ 관례(冠禮)와 계례(笄禮)

★ 관례의 意義

관례와 계례는 소년소녀가 결혼전에 먼저 성인례(成人禮)를 치루는 의식이다。이 의식에서는 우선 처음으로 어른 의복을 입고 관(冠)을 쓰며 이름대신 字를 지어 부르게 된다。관례를 치르고 나면 어엿한 어른으로서 행세하게 된다。물론 결혼도 그 후에라야 할 수 있다。관례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른이 되는 시기、즉 생리적인 변화기인 15에서 20歲 사이에 행해졌다。그러나 이 관례는 지금 폐지되어 거의 찾아볼 수 없으나 대신 성년식이란 형태로 간단히 거행되고 있다。

★ 전통관례(傳統冠禮)

이미 없어진 의례이므로 간단히 설명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관례 때가 되면 좋은 날을 택하여 대소가 어른분과 이웃어른을 초청하여 주효(酒肴)를 준비하고 행사자리를 마련하여 初加祝、再加祝、三加祝을 읽을 때 마다 의관을 바꿔 입고 절차대로 진행한다。이 의식은 주례자(賓)의 주관하에 진행되었으며、이때의 주된 의식은 앞에서 말한 三加禮이다。初加、再加、三加 등 이 세번의 禮가 진행될 때마다 祝文이 낭독된다。이때 주례자는 당사자에게 字를 지어주는데、이로부터 남들은 字만 부르고 이름은 부르지 않는다。三加禮가 끝나면 사당에 가서 고하고 어른들에게 인사하는 것으로 의례절차는 끝난다。참고로 고사를 소개한다。

※冠禮告辭

維歲次 ○○年 ○○月 ○○日 ○孫 ○○ 敢昭告于

顯 某位(考位이상 各位를 列書) 某之子 (弟또는 姪) ○○ 年漸長成 今將加冠 謹以 酒果用伸 虔告謹告

*해설〓모년 모월 모일 모손 ○○는 삼가 여러 조상님 에게 감히 아뢰 나이다。○○의 아들 ○○가 나이 점점 장성하여 이제 관례를 드리옵기 삼가 술과 과일을 펴 공손히 고하는 바 입니다。

옛날에는 여자도 혼인을 정하거나 나이가 14세이상 되면 비록 혼인을 정하지 않았더라도 계례(笄禮)를 행했다。계례란 비녀를 꽂는 의식이며 어머니가 주장(主掌)한다。주례는 친척중에서 예법 밝은 부인에게 사흘전에 요청한다。당일 날이 밝으면 의복을 내놓고 차례대로 서 있다가 주례가 오면 어머니가 맞아 들인다。주례가 비녀를 꽂아주면 방으로 가서 배자(背子)를 입는다。배자는 소매가 없는 친의(내의 속에 입는 옷)로서 빛갈이 있는 비단이나 명주로 만들고 길이는 치마길이와 같게 한다。차례로 설 때는 어머니가 주인의 자리에 선다。이어서 제사를 지내고 나면 사당에 데리고 가서 참배를 시키고 손님을 대접한다。

★ 성년식(成年式)

이와 같이 관례는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행해지던 의식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성년식이라고 하여 관례에 해당하는 의식이 있었다。그만큼 모든 나라에서는 젊은이에 대한 기대와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에 와서「成年의날」을 정하고、특별한 개인적 의식은 없으나 20세가 된 모든 남녀들에게 성인의 권리가 부여됨을 축하하고 있다。그러나 간단한 단체행사로 끝나기 때문에 과연 그 행사가 본인들에게 어느 정도의 감명과 각오를 줄 것인지 의문이다。그보다는 각 가정에서 개별적으로 전래의 관례에 준해서 엄숙하게 거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예컨대 자녀가 二十세가 되는 생일에 집안어른들과 이웃어른들을 초청해서 간단한 상을 차리고 주례자가 성년고사도 읽어 조상에 고하는 등 엄숙하게 하면 당사자에게 더욱 강력한 인상을 주는 뜻깊은 행사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이때는 어른이 되는 만큼 술도 조금내고 잔치상도 어른답게 차려주어 술 마시는 예의를 일러주는 것도 좋다。이와 같이 각 가정에서 성년식을 특별한 날로 취급한다면 당사자들도 책임과 긍지를 갖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 혼례(婚禮)

혼례는 인간예절 중 가장 중요한 예식의 하나이다。자고로 선현과 선조들께선 혼례에서 첫째 동성동본 혼인을 안 할것、둘째 혼인에 재물(財物)을 논하지 말것、세째 육례(六禮)를 갖추어 혼례를 할 것 등 원칙을 세워 두었다。그래서 옛날에는 주나라 시대부터 삼서육례(三誓六禮)라 하여 납채(納采)、문명(問名)、납길(納吉)、납정(納徵)、청기(請期)、친영(親迎)등 혼례의 격식이 매우 엄격하였다。그러나 이것이 너무 번거로와서 宋代에 주자가 이를 조금 줄여서 의혼(議婚)、납채(納采)、납페(納幣)、친영(親迎)의 四禮를 만들었다。우리나라도 이를 본받아 사례를 치르기로 되었다。그러나 지금은 이것도 번거로와 옛 격식 그대로를 따르지 않고、서양식 결혼을 하거나、약간 신식을 가미하여 시행하고 있다。그러나 여기서는 참고로 우리 전래의 풍습을 알아두기 위해 옛날 혼례식을 그대로 소개한다。

★ 의혼(議婚)

남자 나이 15歲로부터 30歲、여자는 14歲로부터 20歲에 이르면 부모는 자녀들의 혼인을 의논하였다。그러나 혼인할 사람이나 혼주가 기년(朞年) 이상의 상중이 아니어야 혼인할 수 있었다。혼기를 맞이한 신랑 신부 집에서는 먼저 중매인(仲媒人)을 상대편에 보내어 당사자의 인물、성행、학식、가법、형세(경제적형편)、인품(특히 부모에 관해서)등을 알아본다。이밖에 동성동본(同姓同本)이 아닌가、혹시 악질(惡疾)이 없는가를 알아본 후 조건들이 좋아서 합의가 이루어지면 정혼을 하는데 이를 議婚 또는 面婚 이라고 한다。정혼이 이루어지면 신랑측의 청혼(請婚)편지와 신부측의 허혼(許婚)편지가 오고 간다。요즘은 새로운 풍속에 의하여 신랑 신부 사이에 약혼을 하고 간단한 약혼식을 거행한다。신랑측의 청혼 편지와 신부측의 허혼편지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 청혼(請婚)편지

우러러 사모 하옵건대 그동안 존체 안녕 하시옵니까。저의 자식의 혼사는 중매로 이미 허락하셨으므로 저의 가문으로서는 큰 영광 이옵니다。이에 사성을 함께 올리오니 연길을 보내주시옵기 바라나이다。남은 예를 다하지 못하고 삼가 올리나이다。

※ 허혼(許婚)편지

봄철에 존체 만안하십니까。저의 딸 혼사는 권유하심에 따라 어찌 듣지 않겠습니까。하늘이 정한 인연으로 생각하옵고 근배 상장나이다。

★ 납채(納采)

납채란 사성(四星) 또는 四柱라고도 한다。신랑집에서 신랑의 생년월일과 시(時)를 일정한 종이에 써서 편지와 함께 신부집에 보내는 의식이며 납폐로 대신하기도 한다。四星을 받은 신부집에서는 연길(涓吉)을 써서 답장과 함께 신랑집으로 보낸다。연길이란 혼인날짜를 정한다는 뜻이다。여자의 생리일 등을 고려해서 좋은 날짜를 택한다。

四星은 일정한 간지(簡紙)를 다섯번 혹은 일곱번 접어 그 한가운데 쓴다。그리고 붉은 보에 싸서 전인(專人)으로 하여금 정중하게 신부집에 보내면 신부집 혼주가 의관을 정제하고 소반위에 공손히 받아서 함을 개봉한다。그리고 신부집에서도 답서를 涓吉과 함께 專人에게 주고 음식을 대접한다。원래는 이 사성을 보낼 때 신랑집 사당에 고하고、신부집에서도 사성을 받으면 사당에 고하게 되어 있었지만 요즘은 거의 없어졌다。

※ 四星書簡文

존체 만중하심을 앙축 하나이다。혼사는 이미 허락하심을 받았아오니 저의 가문에 영광이오며 기쁨이옵니다。사주단자를 보내오니 연길을 보내 주기를 바랍니다。

※ 涓吉書簡文

존체 만중하십니까。저의 여아 혼사에 있어서 이미 사주단자의 예장을 받자오니 가문의 행운 이옵니다。이에 혼인날짜를 아뢰면서 신랑의 옷 치수를 적어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 납폐(納幣)

涓吉書狀이 끝나면 신랑집에서 혼례전에 신부용 혼수와 예장(禮狀〓婚書)및 물목(物目)을 넣은 혼수함을 신부집으로 보내는데 이를 납폐라 한다。신부집에서는 도착한 혼수함을 탁상위에 받아서 주인이 개봉한다。근래에는 혼수아비 대신 신랑친구나 친지 중에서 함을 메고 가는 경우가 많다。예장 종이는 백지를 길이 36센티미터、폭 60센티미터 정도로 하여 아홉칸으로 접어 좌우양편을 1칸씩 비우고 7칸에 쓴다。

※ 예장(禮狀)

중추지절에 존체 만복하시나이까。저의 ⅹ째 아이 ○○가 이미 장성하여 배필이 없더니 크게 사랑하심을 입어 귀한 따님을 아내로 삼게해 주시니 이에 조상의 예에 따라 삼가 납폐하는 의식을 행하오니 살펴주시옵소서。

※ 혼수함 봉하는 방법

혼수함 안에 청결한 종이를 깔고 함 밑에 예장지와 납폐(물목)를 넣은 다음 혼수를 넣는다。먼저 홍단을 담고 그 위에 청단을 담은 후 종이를 덮고 싸리나무 가지로 혼수감이 놀지 않게 하고 함을 닫는다。이것을 다시 붉은 보로 네귀를 맞추어 싸매고 종이를 감고 「근봉」이라 쓴다。 무명베 여덟자로 세자는 땅에 끌고 나머지로는 고리를 만들어 함을 짊어진다。

★ 친영(親迎)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혼례 하는 것을 말한다。친영에 앞서 양가의 부모들은 아들딸에게 훈계한다。대례(大禮) 며칠전 또는 전날밤 아버지는 아들을 조용히 불러 앉히고 결혼의 중대성과 부부의 예절에 관하여 엄숙하게 교훈을 하고、어머니도 역시 아버지의 교훈을 보충해서 여러가지를 자상하게 가르쳐 준다。특히 어머니는 성(性)지식 이라고 해서 신부를 대하는 것을 이때에 가르쳐 준다。

신부집 부모교훈도 신랑의 경우와 같다。신랑아버지는 딸에게「공경하고 삼가하고 주야로 시부모님의 영(令)을 어기지 말라」또「배우고 또 배워서 여자로서의 예(禮)를 지키라」하고 엄하게 훈계 한다。어머니는 특히 첫날밤의 절차、예법、인사、식사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세밑하게 가르쳐 준다。

1. 전안레(奠雁禮)

전안례는 신랑을 맞아 대례를 치르는 제일 처음의 절차로 신부집에서 신랑을 맞아 들이는 의식이다。

2. 교례배(交禮拜)

신랑과 신부가 처음으로 상면하여 서로 예를 교환하는 의식이다。대청이나 마당에 차일을 치고 한다。

3. 신방(新房) 또는 신혼여행

혼례식이 있은 후 신랑과 신부가 한방에서 처음으로 함께 지내는 방을 신방이라 하고 그날 밤을 첫날밤 이라고 한다。그러나 요즘은 거의가 신혼 여행을 가서 여관이나 호탤에서 첫날밤을 지내고 있다。하지만 신식 결혼을 하더라도 첫날밤만은 신부댁 에서 마련한 새롭고 깨끗한 요 이불을 덮고 자는 것이 훨씬 뜻이 있을 것이다。신혼여행은 그 이튿날 떠나도 된다。

4. 우귀(于歸)

우귀를 신행 이라고도 한다。신부가 정식으로 신랑집에 입주하는 의식이다。옛습관으로는 초례 후 수개월 심지어는 수년씩 지낸 후에 신행하는 예가 있었고、보통은 二、三日 지낸 후 한다。

신부가 신랑집으로 갈때 신부의 아버지 또는 가까운 친척이 데리고 간다。

5. 현구례(見舅禮)

신부가 신랑집에 와서 시부모와 친척에게 첫인사를 하는 의식이다。이때 신랑의 직계존속 에게는 四拜를 하고 술을 권한다。그 외는 한번 절한다。옛날에는 대청에 자리를 마련하여 병풍을 치고 시아버지는 동편에、시어머니는 서편에 앉은 후 주안상을 차리고 배례한다。 시조부모가 생존해도 시부모부터 먼저 뵙고 다음에 시조부모를 뵙게 되어있으며、그다음은 촌수와 항열순에 따라 인사를 드린다。

6. 폐백(幣帛)

신부가 처음으로 시부모를 뵈올 때에 올리는 대추나 말린 궝고기를 폐백 이라고 한다。대추는 시아버지에게、궝은 시어머니에게 드리는 것이다。시아버지만 계시면 대추만、시어머니만 계시면 궝만 쓴다。시부모가 안계시면 폐백은 드리지 않는다。이 모든 행사가 끝나면 신부는 신랑가족으로서 자연스레 행동하게 된다。

※ 외봉(外封)은 따로 봉투를 만들지 않고 앞의 그림과 같이 백지 반장위에 청혼서(또는 허혼서)를 밑에 놓고、그 위에 사성(또는 연길)을 얹어 접는다。종이 끝가는 면에 년월일과 근봉(근봉)을 쓰고 뒷면에는 각각 위의 그림과 같이 쓴다。

■ 상례(喪禮)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참으로 슬프고 엄숙한 일이다。이 슬픈 심정을 질서 있게 표현하면서 마지막 이별을 엄숙하고 절차 있게 행하는 것이 곧 상례이다。그러나 禮라는 것은 알맞게 해야 한다。「過恭而非禮」라는 말이 있다。「지나친 공경은 오히려 禮가 아니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종래의 우리 상례의식은 허례허식이 지나쳐「三년상을 치르고 나면 기둥뿌리도 남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그래서 요즘은 많이 간소화 되었다。그렇기는 하지만 아직도 더 간소화해야 할 여지는 남아 있다。전래의 상례절차는 다음과 같다。

★ 임종(臨終)∶숨이 끓어지는 순간을 곁에서 지켜 드리는 일。

★ 정제수시(整齊收屍)∶돌아가신 분의 몸과 수족을 반듯하게 정제하는 일。

★ 고복(皐復)∶사람이 죽으면 혼히 몸에서 떠난다하여 그 혼백을 다시 불러 몸에 붙게한다는 뜻。

★ 발상(發喪)과 입상주(立喪主)∶발상이란 이제부터 상례가 시작된다는 뜻이다。그러므로 정식으로 상주를 세우게 된다。

★ 호상(護喪)∶服을 입지 않는 친지 중에서 상례에 밝고 경험이 있는 사람을 가려 초종(初終) 범절 일체를 맡아서 지휘 감독케 하는데 이 사람을 호상이라 한다。초종이란 초상이 난 뒤로부터 졸곡(卒哭) 까지를 일컫는다。

★ 상전(上奠)∶성복제(成服祭) 이전까지는 돌아가신 분이라도 생시와 같이 모신다는 뜻에서 포혜(脯醯)를 올리는 일。

★ 영정·향탁(影幀·香卓)∶고인의 사진을 제상위에 올리거나 향을 피우기 위해 향、향로、향합、촛대 등을 놓는 탁자를 준비하는 일。

★ 부고(訃告)∶장지와 장일(葬日)을 친지에게 통지。

★ 습(襲)과렴(殮)∶습이란 향나무 삶은 물(香湯水)이나 쑥을 삶은 물로 시신을 정결하게 씻는 일이다。습이 끝나면 렴을 하는데 이때 수의(壽衣)를 입힌다。

★ 설전(設奠)∶상을 당하고 처음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奠은 술、과일、포、혜(醯)로써 한다。

★ 반함(飯含)∶시신의 입에 구슬(無孔珠)과 쌀을 물려주는 것을 말함。

★ 소렴(小殮)∶시신에게 수의를 입히는 절차로써 二일째 되는 날 아침에 행한다。

★ 대렴(大殮)∶소렴이 끝난 뒤 시신을 입관하는 절차이다。소렴 이튿날에 하는 것 이어서 죽은지 三일만이다。

★ 성복(成服)∶상복을 입는 절차이다。옛날에는 운명한 四日만에 하는 것이 보통이나 요즘도 대렴 이튿날에 하고 있다。

★ 조석전(朝夕奠)과 상식(上食)∶상중에 아침(朝奠)、저녁(夕奠)에 奠을 올리고、아침 저녁 식사시간에는 상식을 올린다。

■ 제례법(상식)

기제사에 대한 상식

기제사란 죽은 사람의 망일(亡日)에 지내는 제사입니다.    亡者를 추모하는 뜻으로 지내는 제사로서  전통예절이 그리 어렵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지켜지지 않음은 그만큼 현대인들이 제사를 등한시 하고 조상에 대한 자손의 도리를 다하지 않은 결과로 생각됩니다. 제사는 자기를 낳아 길러주고 돌보아 주신 선조, 또는 형제자매에 대해 정성을 다해서 예(禮)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차례에 관한 상식

우리 한민족의 고유 명절인 설날과  추석날에는 조상의 음덕을 기리며 차례를 올리고, 모든 가족이 한데 모여 화목을 다지는 날입니다.

설날과 추석 날 아침에 지내는 차례는 가문마다 집집마다 예절이 조금씩 다릅니다. 여기 소개하는 차례상 차리기는 우리나라 향교에서 권장하는 가장 표준에 가까운 전통적인 방법을 소개하니, 이대로 따른다기 보다는 가풍의 예절을 지켜 지내되 잘못된 것이 있으면 참조하기 바랍니다.

차례장소는 대청마루나 거실이 적당할 것입니다. 예전에는 차례를 사당에서 지냈으나  요즘 사당을 모신 집이 거의 없어 무의미 해졌습니다. 복장은 한복 차림이 좋으며 특히 설 차례는 색동저고리 등 화려한 옷차림도 무관하다고 합니다. 한복을 입고 차례를 지낼 때는 두루마기를 입는 것이 예의입니다.

차례의 특징은 기제사와 달리 축문이 없으며, 술은 한번만 올리는 단 잔으로 하며 술 대신 차를 올려도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메(밥)대신 설에는 떡국을, 추석에는 송편을 올립니다 제물은 가정형편에 맞게 준비하고 정성을 담아 장만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옛 어른 들께서 말씀하시기를 흉년이라고 거르지 말고 풍년이라고 지나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제사의 원리

사람이 죽으면 제사를 지낸다.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고 추모하는 뜻에서 매년 그날이 되면  제사를 지내는데,  현대의 우리들은 제사 지내는 격식에 대하여 무척 어려워한다. 그러나 제사 지내는 원리만 알면 그 순서나 상 차리는 법에 대하여 쉽게 이해를 할 것이다.

우선 우리 산 사람이 식사하는 순서부터 다시 떠올려 보면, 식사 전에 먼저 술을 한잔 마시고, 이어 식사를 하며, 마지막에 과일 같은 디저트를 먹지 않는가? 조상신이 드시는 순서도 마찬가지이고, 따라서 상 차리기도 이 순서에 따른다고 생각하면 큰 차질이 없을 듯 하다. 때문에 신위를 기준으로 해서, 가장 앞자리에 술잔을 차리고, 그 다음엔 안주 될 만한 것을 진설한다. 다음 차례가 밥 반찬이 될 것은 저절로 명확해지고, 마지막 차례는 물론 디저트 거리가 될 터이다.

이것을 제사 올리는 산 사람을 중심으로 보면 물론 순서가 거꾸로 될 것이다. 맨 앞이 디저트용 과일, 다음이 식사에 쓸 반찬, 그 다음은 술 안주가 될 음식들, 맨 안쪽이 술잔… 순이 된다. 제사의 원리는 일반 손님 대접과 별 차가 없다. 집에 손님이 오면 우선 모셔 들이고, 인사부터 하는 것은 누구나 하는 첫일. 그리고는 우선 술을 대접한다. 그러다 때가 되면 밥을 준비해 드리고, 디저트로 과일 같은 것을 내놓는다. 술, 밥, 디저트가 끝나고 나면 밥상을 치우고,  드디어 손님을 떠나 보내는 인사를 나누는 것이 전체적 순서. 제사 역시 꼭같이 진행된다고 보면 무리가 없다.

★제사의 순서

1) 강신 (조상신 모시기)

더욱이 조상신은 살아 있는 사람과 달라, 지상에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 아니라 모셔 와야 제사를 드릴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일반 손님 접대와 차이가 나는 것 중 하나. 이 절차를 강신(降神)이라 한다. 제사 참례자 들이 늘어선 가운데 제주가 나아가 먼저 향을 피우고, 이어 “삼제”를 하는 형식으로 진행한다. 삼제는 술을 반잔쯤 받 아 세번에 걸쳐 그릇에 지우는 일이다. (향을 피우는 것은 위에 계신 조상신을 모시는 것이고, 삼제를 하는 것은 아래에 계신 신을 모시는 행위이다.)  

2) 참신 (전체 인사 드리기)

이렇게 해서 조상신이 임하셨다면, 다음엔 모두가 인사를 드리는 것이 도리일 터. 이것을 전통 제례에서는 “참신”(參神)이라 부르며, 우리말로 풀면 "조상신께 인사를 올린다"는 뜻이다.  신주를 모시고 있을때는 참신을 먼저 한 다음에 강신의 순서로 한다. 

3) 삼헌 (술 올리기)

다음은 술을 올린다. 손님이라 해도 최소 석잔은 권해야 정이 있을 듯. 그래서인지 기제사 등 여러 제사 때는 술을 석잔 올린다. 단 명절 제사떼는 한번만 올린다.(단배)이것을 부르는 의례 용어는 “삼헌”(三獻)이다. 적잖이 어려워 보이는 말이지만, 특별한 의미는 없다. “헌”이라는 것은 헌납·공헌 등 말에서  흔히 쓰는 "드린다" "바친다"는 뜻이니, 결국 술 석잔을 올린다는 의미일 뿐이다. 첫잔은 초헌(初獻), 둘쨋잔은 아헌(亞獻), 마지막 셋째잔은 종헌(終獻)이라 이름 붙여져 있다. 첫잔 올리기, 다음 잔 올리기, 마지막 잔 올리기라는 뜻. 하지만 추석이나 설에는 한잔, 즉 한번만 올린다. 이를 `단배' `단잔'이라 한다.

4) 독축(권하는 말씀 올리기)

하지만 음식을 그냥 드리기만 해서야 도리를 다한다고 보기 어려워서. 많이 잡수시라고 권하는 말씀을 곁들여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올리는 말씀을 전례에서는 “축”(祝)이라 하고 축 읽는 절차는 “독축”(讀 祝)이라 한다. 독축은 첫잔을 올려(초헌) 놓고 하는것이 이치에도 맞을 것이다. 축은 보통 한문으로 된 것을 쓰지만, 지금 세대에겐 합당하지 않아 보인다. 읽는 사람도 모르고 듣는사람, 초대된 조상신도 알아듣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주문 같이 들릴 뿐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별다른 내용은 아니다. "제삿날이 돌아 와 술과 음식을 준비해 잔을 올리오니 잡수십시오"라는 것이 전부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한글로 알기쉽게 마음을 적어 올리는 것이 더 현실적이 아닐까 생각된다. 청년 유도회에서도 진작부터 한글 축문을 제시해 놓고 있다. 명절 제사때에는 이 절차를 생략하도록 권하는 경우도 있다.

5) 첨작 (술 더 권하기)

술 석잔이 끝난후 술을 더 권하는 절차가 “첨작”(添酌)이이다. 말 그대로 잔에 술을 더 채우는 절차인데 이를 위해 앞선 종헌 때는 잔을 반만 채워둔다.

6) 유식 (식사 올리기)

다음은 식사를 권하는 순서이다. 의례 용어로는 “유식”(侑食)이라 부르며, "식사를 권한다"는 뜻이다. ①이제 본격적으로 식사를 올리려면 우선 밥 뚜껑을 열어야 할 것이다. 이 절차를 “계반”(啓飯)이라 부른다. "밥 뚜껑을 연다"는 한자말이다. ②이어 숟가락을 밥그릇에 꽂아 드려야 조상신이 식사를 할수 잇는데 이것을 “삽시”( 揷匙)라고 한다. 이것 역시 "숟가락을 꽂는다"는 의미의 한자말이다.

7) 합문 (식사 중 자리 피하기)

손님은 식사하는 동안 주인이 함께 앉아 이것저것 반찬을 권하기도 하지만, 조상신은 다르다.  식사하는 것을 볼수도 없고 지켜보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때문에 제상을 방에 차렸을 때는 제관들이 모두 방 밖으로 나가 문을 닫고 기다려야 한다. 대청에 차렸을 때는 뜰 아래로 내려서서 자리를 피해야 한다. 하지만 단칸 방 등에선 그럴 수 없으니, 이때는 제관들이 모두 엎드려 기다리면 될 것이다. 이 절차를 “합문”(闔門)이라 한다. 문을 닫는다는 뜻. 그 시간이 3~4분은 돼야 한다는 책도 있고, 젓가락을 세번 혹은 아홉번 두드리는 시간이면 된다고도 한다.  젓가락을 두드려 시간을 삼는 것은 그 각각이 밥을 한 숫가락 드시는 시간을 의미한다고 한다.

8) 헌다 (숭늉 권하기)

식사를 다 드셨으면 숭늉을 올리는 것이 우리의 어른 모시는 법도이며 조상신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숭늉을 올리려면 먼저 식사 자리로 제관들이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이것을 “계문”(啓門)이라 한다. 다시 문을 열고 다가 간다는 뜻이다. 이어 숭늉을 올려야 할 순서인데, 이 절차를 “헌다”(獻茶)라 하며 이는 차를 올린다는 뜻이다. 조상신이 숭늉을 마실 동안에도 2, 3분간 읍하고 기다려야 맞는 예의이다.

9) 철시복반 (상 정리하기)

조상신의 식사가 끝났으면 상을 정리할 차례이다. 수저를 내려 놓고 밥 뚜껑을 닫는 일일 것이다. 수저 내려 놓는 일을 한자로 나타내면 “철시”(撤匙), 밥뚜껑 덮는 것은 “복반”(覆 飯)이다.  그래서 이 절차를 의례 용어로는 “철시복반”이라 한다.

10) 사신 (송별 인사)

식사가 끝났으면 조상신을 이제 보내 드려야 한다. 이별 인사를 올리는 것을 “사신”(辭神)이라 한다. "안녕히 가십시오, 다음에 또 모시겠습니다"는 뜻.  이 사신은 제사 참여자 모두가 함께 인사를 드리는 형식으로 행해진다.

절하는 순서

제사를 지낼 때 보면 흔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퍽 엎드려 꾸벅 절을 해댄다. 그러나 제사 때 하는 절, 즉 제배(祭拜)는 단순한 절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의식이라고 보는게 좋을듯 하다. 전통적으로는 아래에 나열하는 순서를 따르나, 근래에는 그 중 “읍”의 차례를 생략해도 좋다고 권하는 경우도 있다.

제배는 서 있는 자세에서 출발하고, 그것으로 끝난다. 이 자세를 “흥”(興)이라 하며, "일어서 있다"는 뜻으로 보면 된다. 서 있는 상태에서 들어가는 첫 제배 순서는 “읍”(揖)이다. “읍” 은 양 팔을 눈 높이까지 올려 모아 쥐는 행동이며 동양의 독특한 인사 법 중 하나이다. 다음에는 모아 쥔 양 팔을 내리면서 꿇어 앉는다. 이를 “궤”라 한다. "꿇어 앉는다"는 뜻의 한자말이다. 꿇어 앉은 뒤에도 또 두손을 다시 모아 쥔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높이가 “읍” 때와 달리 가슴 정도에 머문다. 이 순서를 “공”'(拱手)라 부른다. 그런 다음에야 엎드린다. 절을 한자로 “배”(拜)라고 한다. 이것 이 끝나면 일어나기, 즉 “흥”으로 순서가 다시 이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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