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후기
양산서원 추계 향사 봉행(2018)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10-29 20:01:45       조회수 : 1356 첨부파일 :  



양산서원 추계 향사 헌다례 및 헌화례 행사가 10월27일 11시에 양산서원 경내 숭덕사에서 거행되었다.

부계면 남산4길에 위치한 양산서원은 1786년(정조10년) 설립 되었다가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毁撤)된 후 향사도 재대로 지내지 못하다가 지난 2011년 문중 관계자들의 노력으로 많은 돈이 투입되어 다시 원상 복구 되었으며 복원후 매년 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이완재 양산서원 원장을 비롯하여 홍상근문회장, 함창종회장 등 문중의 많은 인사들이 참석하였으며 그밖에 타문중 인사들과 내외빈들이 참석하여 행사를 빛냈다.

초헌관 : 이완재(양산서원 원장 전 영남대교수)

아헌관 : 이필주(영종회장)

종헌관 : 이수목(성균관 유도회 대구지부 부회장)

축 관  : 홍석균(문경 함창파 종친회장)

향사봉행 5현

高麗門下舍人敬齋先生(고려문하사인경재선생)

朝鮮朝大提學文匡公虛白先生(대제학허백선생)

吏曹正郎寓庵先生(이조정랑우암선생)

贈副提學木齋先生(부제학목재선생)

敦寧府都正睡軒先生(돈령부도정수헌선생)

1) 고려문하사인 경재선생

1366년(丙午, 공민왕16)

정월 13일 인시寅(時)에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 갖골 (한밤고을)에서 태어나다.

선생의 본관은 부림(缶林)이고, 휘는 노(魯) 자는 득지(得之), 호는 경재(敬齋)이다. 시조는 고려조에서 재상을 지낸 난(鸞)이고 기시조(起始祖)는 좌(佐)로, 선생은 부림홍씨 9세이다.

1390년(庚午, 공양왕2) 25세

별시문과에 합격하다.

1391년(辛未, 공양왕3) 26세

포은공이 선생을 한림원에 추천하였으며, 임금의 지극한 사랑으로 단계를 밟지 않고 정4품직인 문하사인(門下舍人)에 오르다.

1392년(壬申, 공양왕3) 27세

1월 이성계 일파의 정치적 세력이 더욱 강화되고 신왕조를 세우려는 야욕이 노골화되자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병을 핑계로 귀향하다. 선생이 떠날 때 스승인 포은공이 이 소식을 듣고 “득지가 참으로 뜻을 얻었도다!(得之得之)”라고 말하다. 선생은 고향으로 돌아온 뒤 포은이나 야은 길재(吉再)와의 관계를 일체 숨긴 채 도연명의 행적을 좇았지만 포은과 은밀히 연락하였다. 4월 포은공이 선죽교에서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듣다.

7월 17일 곡기(穀氣)를 끊은지 13일 만에 돌아가셨다. 향년 27세이며, 선생이 순절하기 전날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섰다.

2) 조선조대제학 허백정선생

1438년(戊午, 세종20)

경북 상주시 함창읍 여물리余物里(羊積里)에서 태어나다. 휘는 귀달(貴達) 자는 겸선(兼善),호는 허백정(虛白亭)과 함허정(涵虛亭)이며, 시호는 문광(文匡)이다. 본관은 부림缶(林)으로 부림홍씨 10세이다,

1461년(辛巳, 세조7) 24세

강릉별시(江陵別試) 문과에 급제하다

그후 여러관직 생활 후

1492년(壬子, 성종23) 55세

홍문관 대제학大(提學)이 되어 문형(文衡)의 자리에 오르다.

1493년(癸丑, 성종24) 56세

의정부(議政府) 좌참찬(左參贊)에 이어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지내다.

1495년(乙卯, 연산군1) 58세

의정부 우참찬(右參贊)에 오르면서 세조와 예종, 성종, 연산군 4대에 걸쳐서 관직생활을 하다. 연산군이 정사(政事)를 게을리 하자 구유생소(救儒生疏)를 올리고, 이듬해에도 청종간소(請從諫疏)를 올리자 임금의 눈 밖에 나기 시작하다.

1498년(戊午, 연산군4) 61세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되어 좌천되었다가 곧 의정부 우참찬에 복직하였으며, 홍문관대제학(大提學)에도 다시 올라 성종과 연산군 양대에 걸쳐 2차례 문형의 자리에 오르다.

1503년(癸亥, 연산군9) 66세

무고로 삭직되어 경기도 관찰사로 나가다.

경기도 관찰사 재임 중 왕명을 가벼이 여겼다는 죄목으로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되었다가 취조를 받기 위해 다시 한양으로 오던 중 6월 22일 단천에서 교살(絞殺)되다. 네 아들도 이 사건에 연루되어 거제도로 유배되고, 부인은 충격으로 세상을 뜨다. 향년 67세이다.

3) 이조정랑 우암선생

1473년(癸巳, 성종4)

부친 임지인 한양에서 태어나다. 휘는 언충(彦忠) 자는 직경(直卿_, 호는 우암(寓菴)으로 허백정(虛白亭) 홍귀달(洪貴達)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다. 부림 홍씨 11세이다.

1495년(乙卯, 연산군1) 23세

문과文科에 급제 후 승문원(承文院) 부정자(副正字)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다.

1496년(丙辰, 연산군2) 24세

홍문관(弘文館) 정자(正字)와 저작(著作), 박사(博士), 부수찬(副修撰)을 거쳐 수찬(修撰)에 올랐으며, 예조정랑(禮祖正郞) 등을 지내다. 선생은 정희량, 이행李荇, 박은과 함께 어울려 도우(道友)로 지내면서 많은 시문(詩文)을 나누었으며, 당시에 이들은 ‘문장사걸(文章四傑)’로 일컬어지다.

1498년(戊午, 연산군4) 26세

서장관(書狀官)으로 명明나라 사행을 다녀오다.

1504년(甲子, 연산군10) 32세

부친의 사건에 연루되어 진안에 유배를 갔다 다시 취조를 받고 거제도에 유배되다. 선생이 진안으로 유배를 가면서 자신의 앞날에 닥칠 운명을 생각하며 비장한 마음으로 자신의 만사(挽詞)를 적다. 뒷날 중종반정(1506)으로 죽음을 면하기는 하였지만 자만사(自挽詞)를 새긴 비가 선생의 묘소 앞에 세워져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

1506년(丙寅, 중종 원년) 34세

중종반정으로 유배에서 풀려난 뒤 성균직강(成均直講)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나아가지 않다.

1508년(戊辰, 중종2) 36세

병으로 세상을 뜨다. 향년 36세이다. 묘소는 도연리道淵里(현 문경시 영순면 의곡리)이다.

4) 부제학 목재선생

1620년(庚申, 광해군12)

부친 무주공(無住公) 홍호(洪鎬)가 일찍이 문과 급제를 하고서도 관직을 제수 받지 못한 채 태백산 아래에 수월암(水月庵)을 짓고 소요할 때 그곳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나다. 휘는 여하(汝河) 자는 백원(百源), 호는 목재(木齋)와 산택재(山澤齋)이다. 부림홍씨(함창파) 15세이다

1639년(己卯, 인조16) 20세

고려사高(麗史)를 춘추좌전(春秋左傳)의 예에 따라 정리한 뒤 휘찬려사(彙纂麗史) 범례를 짓고서 편찬을 시작하다.

1656년(丙申, 효종8) 37세

봉교(奉敎)로 재직할 때 송규렴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상진과 이원정을 추천하였다가 파직되고 같은 해 「응지상소(應旨上疏)」를 올렸다가 고산도(高山道) 찰방(察訪)으로 좌천되다.

1659년(己亥, 현종1) 40세

5월 경성(鏡城) 판관(判官)으로 있을 때 응구언교소(應求言敎疏)를 올리면서 북방 군정의 폐단과 함께 조정 내 이후원의 붕당 행태를 지적하는 내용을 담아 송시열이 속한 서인들로부터 큰 반발을 싸다.천군(天君)과 팔잠(八箴)을 짓다.

1660년(庚子, 현종2) 41세

병마사 권우의 일을 문제 삼았다가 파직된 뒤 충청도 황간으로 유배되다.

얼마 후 유배에서 풀려난 뒤 고향인 함창 율리로 돌아와 산택재(山澤齋)를 짓고서 학문 연구와 저술 및 강학에 전념하다.

1674년(甲寅, 숙종 원년) 55세

숙종이 즉위하여 병조정랑(兵曹正郞)과 사간(司諫)의 관직이 내려졌으나 병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세상을 뜨다

5) 돈령부도정 수헌선생

1752년(壬申, 영조27)

경북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한밤마을)에서 태어나다. 휘는 택하(宅夏), 자는 화로(華老), 호는 수헌(睡軒)이다. 부림홍씨 21세이다

1786년(丙午, 정조10) 35세

식년시(式年試) 명경과(明經科) 을과(乙科)에 급제하다.

대과 급제 후 승문원(承文院) 부정자(副正字)로 관직을 시작하다.

1795년(乙卯, 정조19) 44세

태상직장(太常直長)에서 성균전적(成均典籍)을 거쳐 병조좌랑(兵曹佐郞), 이조좌랑(吏曹佐郞)이 되다.

1812년(壬申, 순조12) 61세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르다.

1814년(甲戌, 순조14) 63세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을 제수 받다.

리스트

경재선조 묘제 봉행3
양산서원 추계 향사 봉행(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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