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문자유광장
5세조의 휘(이름)는 인석이 아니라 인양(길제사 양)으로 표기함이 마땅한 줄 아룁니다.
작성자 : 홍후조 작성일 : 2018-02-06 13:07:15       조회수 : 1415 첨부파일 :

보일 시 변에 '길제사 양' 자인데 

옷의 변으로 쓰고 '석'으로 읽고 있군요.

함창(문광공)파에서는 양으로 읽고 씁니다만...

다시 말씀드리지만 정축보(1757년, 건곤 2책)부터 6차례 집안 족보 정리(1830년 인의예지신 5책, 1951년 신묘보 9책, 1970년 경술보 단권, 남양 홍씨와 합본 1979년, 한밤에서 주도적으로 만든 2004년 상하 2책)가 있었는데, 어디서든 보일시 변에 길제사 <<양>>을 썼답니다. 형제분이 인자를 돌림으로 하고, 심지어 보일 시 변을 공통으로 썼다는 것이 합리적인 추정입니다. 오래된 족보를 다 찾아보고 말씀하시기 부탁드립니다. 저는 혹시나 해서 다 찾아보니 보일 시 변의 길제사 <양>자이더군요 . 경술보에서 옷의 변으로 하여 오기를 하였고, 2004년 갑신보에서는 보일 시 변으로 한자어를 바로 잡기는 하였으나, 읽기를 여전히 인석으로 하였군요. 

 


최근 홍재휴 아재께서 부림홍보 21호(2019.3.29 간) 7-8쪽에 "5세조 휘 인단, 인양의 석자 오기 재고"라는 글을 쓰셨는데, 정축보보다 이른 동암공(1670-1731)의 [부림세보]에도 정축보와 같이 보일 시 변으로 하여 단/양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최근 발굴된 현존 최고본인 [부림홍씨족보](1664년)가 개수정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볼 때, 그 이전에도 우리 집안 족보가 존재하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거기에도 인단과 인양으로 기록되어 있답니다. 어느 정도 판명이 났으니 이제 다음부터는 잘 고쳤으면 좋겠습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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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관리자 (2018-02-08 07:57:40)
위내용에 대해서는 쉽게 수정하기가 어렵습니다
부림홍문 족보 초보에서 5보까지 확인해보면 보일시 변으로 기록된곳이 있는반면 옷의변으로 기록된곳도 있음이 여러곳 발견되어 문중회의에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보류중입니다. 어떤계기로 확실히 의논이 모아질때 수정예정입니다. 참고 하세요. 사실 다른 선조들의 기록도 오기로 의심되는 곳이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만 쉽게 결론이 나지않아 수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홍성일 (2018-02-20 21:09:45)
단,석이 맞다고봅니다
강희자전에 보면 예전에 보일시와 옷의를 공용으로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더구나 袒단禓석은 그뜻이 웃옷을 벗어서 보여줄만큼 깨끗한 청렴을 나타내는 숙어입니다
원형이정을 이름에 넣어서 4형제의 이름으로 쓰듯이 그옛날 우리선조께서도 형제의 이름을 청렴하고 깨끗하게 살라는 뜻으로 단 석을 넣어서 어질고 고귀하게 살라는 뜻으로 작명하였을 것으로 추측이됩니다
또한 보일시변으로는 양자는 있으나 단자는 7만자 강희자전에도 없습니다
형제의 이름에 같은 항렬을 쓰지않았다고보기에 무리가 있어보입니다
그래서 인단 인석이 맞다고 생각이됩니다
홍후조 (2018-02-21 23:45:24)
몰라서 여쭙니다. 같은 항렬의 형제분을 인자로 돌림을 했으면 되었다고 볼 수 잇지 않습니까?
답변주실 것에 감사
홍성일 (2018-02-22 18:30:01)
맞습니다 인자가 돌림이긴합니다만 제뜻은 꼭 항렬자라고하기보다는 단석의 뜻이 그러하니 형제에게 나눠사용했을 개연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행사후기, 종손어른의 장례식(17.12.8) 보고를 보았습니다.
상소문 11개 조항은 요약한 것인데 전문을 읽어보면
  • 대보사
  • 국립민속박물관
  • 문화재청
  • 한국국학진흥원
  • 성균관
  • 문화체육관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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