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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권갑하 님의 허백 할배 칭송 헌시입니다.
작성자 : 홍후조 작성일 : 2018-08-14 10:54:20       조회수 : 907 첨부파일 :

(헌정시)

 

‘문형과 직신의 대선비’ 문광공 홍귀달 선생을 흠모하며

 

 

권갑하(시인‧문화콘텐츠학박사)

 

일찍이 조선 인물의 반은 영남에서 나고 

또 그 절반은 북부지방에서 난다 했으니

허백정 홍귀달 공이 그 중심에 우뚝 솟았네.


일찍이 조선 성리학을 계승한 

고려 말 충신 (경재) 홍노 선생의 학문과 충절을 이어받아 

대학자와 의병장을 배출한 영남의 대 명문가로 

효와 충, 깨끗한 문풍을 드높였네.


문무를 겸비한 문광공은 

<이시애의 난> 평정의 공을 세웠고 <세조실록> 편찬에도 참여했으며

천추사로 명나라를 다녀온 후

충청도관찰사, 형조·이조참판, 대사성을 거쳐 호조판서를 지냈으며

마침내 홍문 예문 ‘양관’의 대제학을 맡는 ‘문형’(文衡)에 올랐으니 

정승보다 더 자랑스럽게 여겼던 

대 선비의 영예, 가문의 명예를 찬연히 빛내었네. 

아! 일찍이 세상을 놀라게 한 신동으로 주목받아 

조정의 글이 모두 공의 손으로 만들어졌으며 

조선을 대표하는 직신(直臣)으로 추앙받았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고 품은 뜻이 크고 능력이 특출했으며

학문과 인품에 막힘이 없는 중신(重臣. 정2품 이상)으로 명망이 드높았건만

안타깝도다!

폭군 연산에게 스스로 모난 돌이 되어 정을 맞고자 했으니

불의를 참지 못하고 할 말을 다 하는 강직한 신하가 되고자 했으니,

아, 그로 인해 입은 화가 얼마였던가.

“자고 먹는 일 쉽지 않아/ 앙상한 뼈에 가죽만 붙어 있”는 시련을 견뎠지만

급기야 연산의 폭정은 갑자사화에 이르고 말았으니

참으로 애석하고 통탄스런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하늘과 땅, 사람들 모두 “죄가 없는데 죽었다”며 슬퍼하였네.

“신하의 직언을 듣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는 망한다!”며

당당히 목숨을 내놓았던 공의 대쪽 같은 강직함이

오늘도 이 나라를 살리고 바로 세우고 있음을.


당대 최고의 학자이자 육판서를 두루 지낸 명재상이었던 허백정(虛白亭)!

호두껍데기만 한 집에서도 천지를 읽었던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처럼

“단칸 초막이었지만 아흔 아홉 칸의 사색을 하고도 남는다”는, 

큰 뜻으로 마음을 비워 사색과 절개로 채우려 했던 

‘청빈’과 ‘낙도’로 빛나는 ‘허백정’의 드높은 정신이여!

세상 사람들의 흠모와 존경이 온 나라에 널리 퍼졌으니

단칸 초막에서 천지를 껴안는 그 높은 뜻과 고매한 정신, 

참으로 숭고하고 위대하도다!


평생 남과 다투거나 감정을 상하는 일이 없었으며

타인의 삶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화합을 이루고자 했으니

너른 덕행으로 쌓아올린 봄바람 같은 공의 인품이여! 

깊기는 바다보다 깊고 푸른 하늘보다 드높았어라.


그러나 공은 

국사에 있어서만은 할 말을 참지 않고 바르게 나아갔으니,

공을 흠모한 사람들이 가족을 생각해 참으라고 청했지만

“지금 내가 죽은들 무엇이 두려우냐”며 대쪽 같은 정신을 꺾지 않았으니

그 정신 또한 고고하고 고결하도다!


어머니 섬기기를 ‘사랑’으로 하고 아버지 섬기기를 ‘존경’으로 하는

‘애경사상’을 몸소 실천하였으니

공의 효와 충은 바로 이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는가.


그 빛나는 학문과 충절은 임호 · 양산 두 서원에 배향되었고 

‘허백’의 드높은 청렴 정신은 <허백정문집>에 뚜렷이 새겼으니

문광공의 고결한 인품, 위대한 정신과 사상은 

오늘 우리 모두의 가슴 가슴에 저 드높은 신도비처럼 우뚝 솟아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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